<김의원의 국토이야기>당쟁·신분제, 그리고 유교
<김의원의 국토이야기>당쟁·신분제, 그리고 유교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5.22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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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2 14:29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유교를 종교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하다. 교(敎)자가 붙은 이상 종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종교의 정의 여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신교(一神敎)적 가치관에서 본다면 종교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나, 유교에는 조상과 천지를 제사지낸다는 데서 일종의 종교에 속한다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문 끝에는 상향(尙饗)이라고 쓰는데 이는 “바라건데 받아 주옵소서”란 뜻이다. 제상에 차린 음식을 선조들이 잡숫는다고 믿는 것은 영혼불멸을 믿는 것이란 점에서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유교가 종교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자주 문제되었다. 현재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지만 제사를 중히 여기고 천(天)이나 천명(天命)이란 신학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儒)를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유(儒)는 윤리도덕사상일 따름이라도 한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儒를 유교라 부르고 있으나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유학(儒學)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에는 두 곳에 공자(孔子)를 제사지내는 곳이 있지만 儒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유교란 말을 쓰고는 있지만 그 교(敎)는 교육, 교훈의 교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의 유교는 하나의 도덕률인 동시에 일종의 교양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학문이나 교양으로서의 유교는 있지만 그것이 생활내부에 침투하질 못했다.
 
생활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 유교의 종교적 요소의 중요한 부분은 조상을 제사지내는 일이다.
 
일본은 친족을 식별하는 방법이 대단히 엉성하다. 아저씨, 아주머니, 조카로 구분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아버지의 형은 백부, 동생은 숙부로 구변한다. 어머니의 형제는 외삼촌이라 부르고, 아버지 자매의 남편은 고모부, 어머니 자매의 남편은 이모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호칭이 복잡한 것은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초기 우리나라의 유교는 철학을 불교에 맡겨둔 채 오로지 시문중심의 문학유교였다.
 
유교의 원형 그대로 전달된 우리나라에서 유교의 진면목이 나타난 것은 이조 500년간이었다.
 
조선유교의 특징은 첫째로 문신우위의 양반들의 유교였다. 양반들은 조선사회의 지배계급으로서 부역이나 병역일체의 특권을 지녔을 뿐 아니라 관직 이외에는 농·공·상의 어떠한 직업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둘째로 조선의 유교는 주자학(朱子學) 일변도의 유교였다. 그것도 성리학(性理學) 일변도의 그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주자학은 선산(善山) 출신의 길재(吉再)를 필두로 영남의 사림파들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셋째로 조선의 유교는 당쟁의 유교였다. 한정된 벼슬자리를 놓고 많은 양반들이 자리다툼을 하게 되니 세력다툼은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림세력들의 네 번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사화를 거쳐 선조대에 정권의 주도권을 잡게 되자 사림간에 대립이 시작되었다.
 
넷째로 조선의 유교는 엄격한 신분제도와 가족제도 하에 이것들을 율하는 예제(禮制), 즉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예학유교였다.
 
유교가 민족문화 형성에 이바지한 공은 크다. 첫째는 인륜도덕에 대한 것이요. 둘째는 이학(理學) 즉 철학사상에 대한 공적이다. 이기설(理氣設)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유교는 업적 못지 않게 국가발전을 저해한 병폐가 더 컸다.
 
첫째는 인재등용을 문벌로 한 것, 둘째는 가족주의 폐해로 지나친 효의 강조는 국가나 사회를 생각하기보다 가족이기주의의 팽배로 사회정의가 무너진 것이다. 셋째는 당쟁이고, 넷째는 문약의 폐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폐단은 ‘군자불기(君子不器)’사상이다. 기(器)란 용(用)을 말한다. 또는 도구란 뜻인데 기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와같이 유교에는 기술경시의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기나 용보다도 道나 禮를 소중히 하는 것이 儒의 입장이다.
 
유(儒)가 왕조의 질서유지의 어용(御用)사상이 되자 다른 일체의 사상체계를 이단시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교는 중화사상을 조장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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