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드러난 서울시 건축심의 개선 대책
허점 드러난 서울시 건축심의 개선 대책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7.12.20 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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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0 16:50 입력
  
재건축·재개발 디자인 비상… 건축심의 ‘改惡’
디자인 재수는 기본 아닌 필수… 줄줄이 퇴짜
서울시 규제 일변도… 창의성 외려 말살 비판
 
‘성냥갑 아파트를 퇴출시키겠다’는 차원에서 도입한 서울시의 건축심의 개선대책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건축심의 과정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는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 심의 때 ‘재수는 필수’라는 유행어가 생겼을 정도다. 업계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건축사들의 창의성을 오히려 말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또 분양가상한제 등 가뜩이나 사업성이 떨어지는 마당에 서울시의 이같은 조치가 결국 공사비를 끌어올려 재건축·재개발 주민들에게는 추가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디자인 재수 시대=지난 10월 23일 서울시는 서초구 반포동 소재 삼호가든1·2차 재건축조합이 낸 사업계획에 대해 디자인을 문제삼아 다시 심의를 받도록 결정했다. 또 5일 열린 건축위원회에서도 성내동 미주아파트 재건축과 금호13구역 재개발 등이 디자인 수준 미달을 이유로 재심결정을 받았다.
 
그에 앞서 지난 9월에는 반포아파트 700가구를 14~28층 794가구로 재건축하는 계획도 ‘입면 디자인 개선’ 등의 지적과 함께 두 번째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최근에 건축심의를 통과한 가락시영 재건축사업도 5차례나 건축계획을 수정하는 등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보문3구역 재개발과 용산전면3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도 3번의 재심 끝에 통과됐다.
 
지난 9월부터 이달초까지 3개월 동안 8번의 건축심의가 열렸는데 총 25건의 개별건축 계획안 중에서 한번에 디자인 심의를 통과한 안건은 단 1건도 없었다. ‘디자인 추가 개선’이라는 조건부 동의를 얻은 15개 건축안들도 적게는 2~3차례, 많게는 4~5차례 재심을 거쳤다. 이처럼 서울시의 까다로운 디자인 심의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건축규제 ‘이상 따로, 현실 따로’=서울시의 건축심의 개선대책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현실을 감안하지 않았다”며 집중 성토하고 나섰다. 우선 디자인 문제가 심의제도를 강화한다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식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달 29일 서초동 대한건축사협회 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임장렬 성림종합건축사 대표는 “서울시의 건축심의 잣대가 일률적이지 못하다”며 “오히려 지나친 규제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말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또 “재건축·재개발·뉴타운이 동시에 시도되면서 주택시장이 편중화됐고,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한 분양가상한제 등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면서 시장논리에 의한 고품격 디자인 개발이 시도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충기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위원장도 “디자인은 창작”이라며 “법의 잣대로 점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두둔했다. 김원일 전국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사무총장은 “디자인의 심의기준은 심의위원의 주관적 기준으로 결정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자인 개선 움직임 전국으로 확산=서울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디자인 개선에 대한 움직임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건축심의 개선대책에 일선 지자체들이 잇따라 이 제도를 도입키로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 대구, 충북, 마산, 안양 등 광역·기초단체들이 제도 도입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산 등 다른 지자체들도 제도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이번 토론회에 대구·인천 등 광역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각 기초자치단체에서 약 300여명이 참여했다”며 “이제는 주택도 디자인이라는 인식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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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심의 반려 땐 다시 설계해야”
 
■ 디자인 심의제 운용 어떻게…
 
서울시는 지난 8월 29일 △동별 디자인 차별화 △동별 높이 다양화 △탑상형 아파트 디자인 차별화 △상·저층부 디자인 차별화 △하천변 아파트 디자인 차별화 등 5가지 내용을 담은 건축심의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시 관계자는 “성냥갑처럼 획일화된 공동주택 형태를 과감히 탈피해 디자인이 살아있는 공동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건축심의 개선대책을 발표했다”며 “디자인 심의가 한층 더 강화됨에 따라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가 없으면 서울에서 아파트를 짓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선대책에 따르면 1천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는 같은 단지라도 전체 동의 30% 이상을 다른 디자인으로 건축해야 한다. 일례로 10개동짜리 아파트를 짓는다면 최소 3개동은 나머지 7개동과 다른 외관 디자인으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똑같은 높이로 건설됐던 아파트 층수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 단지에 고층과 중층, 저층 등 다양한 층수를 균형있게 배치해 조화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또 주상복합건물의 경우도 X, Y, V, T 등의 획일적 설계에서 탈피해 다양한 외관과 단지 배치를 유도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설계안을 집중적으로 심의키로 했다. 벽면의 30%는 발코니를 설치하지 않고 벽으로 그냥 남기는 등 다양한 입면 디자인도 선보여야 한다.
 
한강변에는 탑상형만을 신축할 수 있게 해 병풍식 판상형 단지가 들어설 수 없게 되며, 저층부 등을 테라스 형태 등으로 신축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물탱크실이나 엘리베이터실 등의 옥탑구조물은 튀도록 설계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시는 내년 3월부터 아파트 외관이나 단지 조경, 층수가 획일적으로 설계되거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건축심의 시 반려 처분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현재 서울시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에 있다.
 
다시 말해 아파트 디자인이 기존 건축물과 비슷할 경우 건축심의에서 반려,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도록 한다는 얘기다. 다시 준비한 건축계획안도 독창성이 결여됐다고 판단되면 건축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디자인 소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 본 위원회에 상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시는 이를 위해 건축심의에 앞서 디자인 사전심의제도를 운용할 계획이며 객관적인 디자인 코드도 개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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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상승 요인 또다른 복병 우려
 
■ 향후 파장
 
서울시의 차별화 된 디자인 유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공사비 상승을 부추겨 재건축·재개발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공사비 상승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들의 추가부담을 불러오게 되고, 이렇게 발생된 추가부담은 일반분양가에 전가돼 주택시장 안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디자인 심의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업기간도 늘어나 사업이 장기화되거나 표류할 수도 있다.
 
또 디자인 변경에 따라 설계도 바뀌게 돼 그때마다 조합원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게 된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재개발·재건축은 일반분양 수입으로 조합원들의 부담을 줄이는 게 통상적인 방법”이라며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이라는 명분 때문에 사업이 지연되거나, 그에 따른 공사비가 늘어날 경우 일반분양가를 높이게 되고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공사비 상승에 대한 부담은 마찬가지다. 또 자체 개발한 디자인이 서울시의 디자인 심의에서 탈락될 경우 그에 대한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디자인 분야에 특허를 보유한 건설사들이 적지 않다”며 “만일 디자인 심의에서 탈락된다면 그동안 쌓은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고 걱정했다. 이어 “건설사들이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에서 서울시의 이같은 규제는 가뜩이나 침체된 주택시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다 할 심의항목과 기준도 없이 심의위원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심의가 이뤄진다는 것도 문제다.
 
한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뚜렷한 심의기준도 없고 구체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모든 비용을 떠안고 사업을 하라는 말 밖에 안 된다”고 비난했다.

이밖에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디자인 차별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기본형건축비로 적용받게 되는 점도 부담이다. 필로티나 외관 차별화 등 단지 고급화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기본형건축비만 인정받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건설사 등에서 제기되는 분양가 상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합리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며 “순조로운 정착을 위해 다각적인 의견수렴 등의 노력도 계속해서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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