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마련 ‘막막’… 民怨대란 걸림돌
재원마련 ‘막막’… 民怨대란 걸림돌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7.01.24 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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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16:56 입력
  
의무설치 될 정비기금 사용 땐 특혜 시비우려
주민들 의견 반영 안돼 사업추진 지연 불가피

 
기존의 주민제안형 정비계획 수립방식을 없애고 시장·군수가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같은 방안이 시행될 경우 추진위 승인 시기도 정비구역 지정 이후로 바뀌게 될 전망이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제도개선안을 건설교통부에 권고했다.
 
때맞춰 서울시도 지난 12일 “그동안 주민들이 수립했던 재개발·재건축 정비계획을 자치구가 맡도록 하기 위해 올 상반기 중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개정할 것”이라고 밝혀 주민제안형 정비계획 수립방식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비계획 수립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대해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황에다가 주민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민원 문제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어 시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도시계획업체들은 “주민들은 경제적 이유 등을 들어 지자체가 수립한 정비계획을 변경하려고 하기 때문에 계획변경에 따른 사업기간이 늘어나게 돼 오히려 사업추진이 더뎌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비계획 수립 재원 마련 요원=청렴위 권고안대로라면 지자체가 정비기금을 이용해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를 제외하고는 적립된 정비기금이 충분치 않아 재원마련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만약 법이 개정된 이후부터 정비기금을 적립한다면 정비계획 재원이 마련될 때까지 정비계획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어 민관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문제화  소지도 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7월 청렴위 주최로 열린 ‘주택재개발·재건축 분야 투명성 제고방안’ 공개토론회에서 <도정법>에 정비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정비기금 설치의무가 있지만 적립실적이 저조해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청렴위 자체 보고도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울산·충청·경상 등 7개 시·도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적립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원·부천·고양·안산·안양·용인시 등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정비기금을 적립하지 않아 행정자치부 종합감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비기금 사용시 특혜 논란 시비도=청렴위는 정비기금의 사용용도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도정법>을 구체화시켜 정비계획 수립용역비, 추진위·조합 초기 운영자금, 안전진단 용역비, 설계·영향평가 용역비 등에도 지원하거나 융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세금 등이 포함된 공적기금을 민간사업에 지원할 경우 특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도정법> 제82조는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시장은 정비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정비기금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정비기금의 설치는 △도시계획세 중 10% 이상의 금액 △개발부담금 중 지자체 귀속분의 일부 △국유지 매각대금 30% △공유지 매각대금 30% △재건축임대주택의 임대보증금 및 임대료 등으로 규정돼 있다.
 
적립된 정비기금은 △<도정법>에 의한 정비사업 △임대주택의 건설·관리 △임차인 주거안정 지원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에 의한 재건축부담금의 부과·징수의 용도에 한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결국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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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젖줄’… 돈 막히면 ‘올스톱’
 
■ 주민제안형 왜 필요하나
 
 
<도정법>상 정비계획은 시장·군수가 수립해 주민공람 및 지방의회 의견을 청취한 후 시·도지사에게 신청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지정 신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내 각 구청 담당자들도 “정비계획을 수립하려면 한 구역당 수억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재정자립도가 낮은 구의 형편상 이를 편성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법률적 기준보다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6조는 “승인받은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관할 구청장에게 정비구역지정에 대한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 또 토지등소유자의 경우에도 관할 구청장에게 정비구역지정에 대한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지역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정비구역지정의 입안을 위한 주민제안이 가능토록 했다. 조례로 위임한 사항이 아님에도 조례 제정 당시부터 지자체의 예산·인력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사정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결국 각 시·도별 조례에 따르면 서울(토지등소유자 2/3 이상), 경기도(토지등소유자 70% 이상), 인천(토지등소유자 70% 이상), 부산(토지등소유자 2/3 이상), 대구(토지등소유자 4/5 이상), 대전(토지등소유자 2/3 이상), 울산(토지등소유자 2/3 이상), 광주(토지등소유자 2/3 이상) 등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지정 신청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도 주민제안형 도시관리계획 입안의 길이 열려 있다. <국계법> 제26조는 “주민은 도시관리계획을 입안할 수 있는 자에게 도시관리계획의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 방안이 그대로 확정·시행될 경우 정비기금에 여유가 있는 서울시를 제외하고는 정비계획 수립이 불가능해져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올스톱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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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정비계획 변경 ‘돈먹는 하마’로 전락
사업 지연에 따른 민원 봇물
주민 의견 수렴 방법도 요원
 
■ 문제점 뭔가
 
 
지자체가 수립한 정비계획의 경우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추진위나 조합에서는 정비계획을 변경하거나 재수립할 가능성이 높다. 돈(정비기금)과 시간(사업기간)만 낭비하게 된다는 얘기다.
 
한 도시계획업체 관계자는 “주민들이 제안해 수립하는 정비계획도 법이나 제도 등 사업환경이 바뀌면서 2~3년 후 변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지자체가 수립한 정비계획을 변경하게 되면 결국 기금만 축내고 그에 따른 사업기간도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껏 들인 정비기금을 무색케 만드는 대목이다. 이럴 경우 지자체가 수립한 정비계획에 대해서는 변경을 불허하거나 변경가능 기간을 정할 수도 있어 민관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비기본계획은 10년마다 수립하고, 5년마다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준용할 수도 있다.
 
▲주민의견 수렴 기회 충분히 줘야=청렴위는 지자체가 정비계획 수립에 앞서 주민의견을 청취하고, 노후도 등을 먼저 조사해서 계획과 관련된 구체적인 의견 등을 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관이 주도하게 되면 나타나는 필연적인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민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도시계획업체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은 엄연히 소유주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대지에 건물을 짓는 게 아니다”라며 “내 집 짓는데 내 의견이 반영이 안 된다면 누가 그 계획에 찬성하겠냐”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정비계획의 적절성 여부=나아가 지자체가 계획 수립 자체에만 매달릴 수도 있어 계획의 적절성에 대한 시비도 문제다.
 
정비계획 수립시 △정비사업의 명칭 △정비구역 및 그 면적 △도시계획시설의 설치에 관한 계획 △공동이용시설 설치계획 △건축물의 주용도·건폐율·용적률·높이·층수 및 연면적에 관한 계획 △도시경관과 환경보전 및 재난방지에 관한 계획 △정비사업시행 예정시기 △재건축임대주택에 관한 사항 △기존 건축물의 정비·개량에 관한 계획 △정비기반시설의 설치계획 △건축물의 건축선에 관한 계획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대수 △홍수 등 재해에 대한 취약요인에 관한 검토결과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
사업의 대부분을 결정짓는 게 정비계획이지만 지자체가 수립한 정비계획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가 있지만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데 ‘공공만이 선’이라는 인식은 곤란하다”며 “민간의 창의성도 살리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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