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에 특혜 주려고 국민혈세 투입” 비난 확산
“공공에 특혜 주려고 국민혈세 투입” 비난 확산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9.06.18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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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02:08 입력
  
사업 시스템 잘 모르는 공공에 권한만 부여
정비업체는 구청·SH공사·주공 하수인 전락
 
 

 

공공 만능주의를 전제로 한 서울시의 정비사업 프로세스 혁신안이 발표되자마자 현장에서는 무능한 공공을 질타하며 실패가 예고된 정책이라는 혹평이 나오고 있다. 공공이 절대선이라는 명분하에 짜맞추기 답안을 내놓았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이번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하성규)의 혁신안은 공공의 적극 개입이 제1원칙인데, 공공이 민간보다 경쟁력이나 투명성이 떨어진다면 이번 방안은 아예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정비사업에 대한 전문지식과 실무능력이다. 이 부분은 업계의 자조 섞인 비판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재건축·재개발은 주민이나 구청 직원이나 모두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정비업체 직원들이 일일이 가르쳐 가면서 사업을 추진한다’는 말이 있다. 민간의 가르침을 받는 공공이 서울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가르침이 달갑지 않은 구청 담당자들은 이런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럼 서울 가서 사업하든지…’ 투명성 부문도 민간보다 낫다고 얘기하기 쑥스럽다. 최근 포항시 전·현직 공무원들이 무더기 실형을 받은 사례나, 최근 검찰이 재건축·재개발 비리를 저지른 서울시내 8개 자치구 구청·의회 소속 23명을 무더기 기소한 사례 등을 보면 말이다.
 

▲공공관리자 제도 도입=이번에 제시된 공공관리자 제도는 재건축·재개발사업의 초기단계인 정비계획 수립단계부터 사업완료 때까지 정비사업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구청장은 정비구역 지정 이전에 정비업체를 선정하고, SH공사나 주공 등을 공공관리자로 지정할 수 있다. 물론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공공이 부담한다. 다만 정비업체 용역비는 추진위 승인 이후부터는 추진위가, 공공관리자 용역비는 시공자 선정 이후부터는 조합이 내야 한다. 공공관리 지속여부는 시공자 선정 이후에 선택이 가능하다.
 

이처럼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업체 선정 용역비를 모두 구청이 부담하게 되면서 특정지역 개발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쇄도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좋은 강남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예산부족으로 정비계획 수립 등이 지연될 경우 민원폭주 사례도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주민들의 의사 여부와 관계없이 SH공사와 주공 등 공공이 사업에 관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비업체도 ‘싫든 좋든’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실력이 있는 업체인지, 용역비는 적정한 업체인지 등을 따져볼 수도 없다. 사업의 전 과정을 함께 할 가장 중요한 파트너를 그냥 구청장이 점지해 주는 시스템이다.
 

정비업체 입장에서도 이제 구청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구청은 물론 공공관리자인 SH공사와 주공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하성규 위원장은 “다수의 정비업체가 주민동의서를 매수·매도하고 추진위 및 조합은 정비업체나 시공자를 사전에 선정해 사업추진 자금을 조달받고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선정해 왔다”며 “이런 비용은 공사비에 포함돼 주민들의 비용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등 부패행위의 연결고리가 상존했다”고 공공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총회 직접 참석비율 상향 조정=자문위는 현재 재건축·재개발의 경우 주민들이 사업추진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동의서를 일괄 징구하고 조합총회 등 의견수렴시 직접 참석보다는 서면동의를 유도해 조합이나 정비업체의 의도대로 결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사업추진 과정에 대한 토지등소유자의 정보공개 요구가 많았음에도 추진위나 조합이 정보공개를 거부했고, 결국 관리처분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용분담액 등을 알게 돼 갈등을 유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자문위는 현행 10%로 돼 있는 총회의 직접 참석 의무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한편 정비사업 홈페이지 구축 및 자료공개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자료 공개 거부시 행정조치를 강화하는 안도 담았다.
 

▲세입자 대책 강화=강화된 세입자 보호대책도 제시됐다. 자문위는 용산참사 이후 이미 〈도정법〉에 반영된 도시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세입자 의견수렴 절차 외에도 △휴업보상금 지급기준 3개월→4개월로 상향 조정 △영업권 확보기간 고려 가중치 부여 △세입자 대책 개별 통지 △주거이전비 차등 지급 등의 방안을 내놨다. 또 철거공사의 경우 시공자 시행의무화를 법제화하도록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서울시는 자문위가 제안한 이번 최종안에 대해 국토해양부 등 관련부서와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서울시 개선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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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 기반시설 비용 부담… 정비업체 자본금 10억
 

■ 혁신안 핫이슈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공공에게도 부담시키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시프트나 문화시설 등을 지을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그동안 기반시설 설치비용은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하고 있어 광역기반시설까지 주민부담으로 전가한다는 비판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자문위는 20m 이상의 도로, 근린공원, 공공공지 등은 공공이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부담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또 인센티브 적용대상 기반시설을 확대해 시프트, 사회복지시설, 문화시설 등을 포함시켰다. 필요한 공공시설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할 경우 100%의 인센티브가 부여되고, 조성원가로 제공할 경우 33%의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이같은 방안에 대해서는 기준을 마련한 뒤 법령개정을 제안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비업체의 등록기준과 취소·제한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자문위는 민간 정비업체의 경우 자본금이나 인력기준 등 업체의 영세성과 전문성이 부족해 업무대행이 부실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본금 10억원, 5인 이상의 상근 전문인력, 시설기준 강화 등 등록기준과 등록취소·제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비사업에 대한 연구 및 기술인력 종사자 교육, 실적보고, 실태보고, 정보관리체계를 구축·운영할 수 있는 협회 설립을 제안했다. SH공사 등 공공기관의 정비업체 참여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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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금 산출 동의서 두번 제출
전문가들, 신뢰성엔 다소 의문
 

■ 사업비 산정 프로그램
분담금 산정과 관련한 주민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비사업비 산정 프로그램’이 개발된다. 조합은 ‘조합설립’ 때와 ‘사업시행인가 이후 60일 이내’ 등 두 번에 걸쳐 이 프로그램에 따라 산출된 분담금을 적은 동의서를 징구해 제출해야 한다. 정비사업비 산정 프로그램은 이르면 올 10월쯤 개발된다.
 

현행 〈도정법〉에 따르면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서 징구 때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을 제시하고 분양대상자별 분담금 추산내용을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개산액 산정내역이 미흡하고 분양수입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분담금 추산내용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가 이 부분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프로그램이 개발되더라도 신뢰성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통상 재건축·재개발 사업비는 인·허가 과정, 부동산 경기, 소송 등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구역마다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영업손실비, 주거이전비, 기반시설 설치비용, 금융비용 등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 이를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업비 개산액을 추정하기 위해 나름대로 표준산식을 만들어 봤다”면서도 “하지만 현장마다 다른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상 표준산식이 의미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비사업 관련 각종 매뉴얼도 개발된다. 공공관리자 사업관리 매뉴얼을 비롯해 정비사업 단계별·관련자별 업무추진 사항, 점검사항 및 점검방법, 위반사항 및 조치방안 등을 담은 매뉴얼로 올해 하반기 안에 작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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