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제도 폐지 이후…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제도 폐지 이후…
  • 최영록 기자
  • 승인 2010.08.19 0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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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11:25 입력
  
“공공성 치우친 정비계획으론 주민동의도 어려워”
북가좌1·홍제4구역 주민들, 정비구역 지정에도  불만
전문가 “주민 입장에서 현실성 있는 정비계획 세워야”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제도가 폐지된 이후 일선 단독주택 재건축 현장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구청이 수립한 정비계획이 사업성은 배제한 채 공공성에만 치중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단독주택 재건축 예정구역이던 서대문구 북가좌1구역의 경우 지난 6월 정비구역 지정을 받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처럼 사업성이 떨어지는 정비계획으로는 주민들의 부담이 커 사실상 사업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장에서의 문제점은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제도가 폐지될 당시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적됐던 부분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지난해 2월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제도가 폐지된 이후 구청이 직접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폐해가 사업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폐지 논의 당시부터 제기돼 왔던 문제점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이같은 정비계획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어 사실상 정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이나 시간을 낭비하게 된 셈”이라며 “구청은 주민들의 입장에 서서 현실성 있는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 “평균 18층 적용하더라도 문제없어”=북가좌1구역은 지난 2006년 3월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포함된 재건축 예정구역으로 지난 6월 서울시로부터 정비구역 지정을 받았다.
 
고시된 정비계획에 따르면 북가좌1구역은 북가좌동 340-30번지 일대에 위치한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면적은 2만1천164㎡이다. 여기에 용적률은 법적상한용적률인 250%에 미치지 못한 225%가 적용됐다. 건폐율은 30%로 최신 아파트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라는 게 설계업체들의 설명이다. 층수는 평균층수 12층 이하가 적용돼 최고 15층의 중층으로 설계됐다. 또 건립 가구수는 총 387가구에 불과하다. 나아가 ‘ㄷ’자 형태인 중정형으로 아파트로 설계돼 있는데다가 전체 건립 가구수 중 100가구 이상이 북향으로 설계돼 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북가좌1구역은 용도지역이 2종 7층인 곳인데다가 주변에 단독주택들이 밀집해 있어 층수를 더 이상 높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주변지역의 여건과 법 테두리 안에서 정한 내용을 기준으로 정비계획을 수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설계업체 관계자들은 층수나 단지 배치 등 건축계획이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설계업체 관계자는 “북가좌1구역의 경우 현재 2종 7층 지역이지만 2종 12층으로 한단계 종상향해 법에서 정하고 있는 평균층수 18층을 적용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실제로 이 구역에 평균층수 18층을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주변지역의 일조권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오히려 개방감이 확보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비계획이라는 것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한번 결정되고 나면 변경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정비구역 주변이 단독주택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정비계획을 세운 것은 해당 구역 주민들의 고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구청의 편의주의 행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서대문구청이 북가좌1구역과 함께 정비계획을 수립한 홍제4구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정비구역 지정을 받을 당시 홍제4구역은 정비기본계획 상 평균층수 15층으로 설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종상향 없이 공공시설부지 제공에 따라 완화받은 평균 18층이 전부다. 게다가 최고층수도 20층으로 제한됐고, 건립 가구수도 254가구에 불과하다. 정비기본계획 상 평균층수 15층을 적용받았을 경우 3종으로 종상향해 최고 35층까지 짓는 타 예정구역들과는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홍제4구역 역시 추진위를 설립하지 못하고 사업이 지연돼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예정구역들도 기피 현상 이어져=이러한 상황이 알려지자 북가좌1구역 인근 예정구역들은 구청이 정비계획을 수립해 주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업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주민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된 계획으로 정비계획을 직접 제안하겠다는 입장이다.
 
서대문구의 한 재건축 예정구역 관계자는 “홍제4구역과 북가좌1구역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비계획 수립시기를 일부러 늦춰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지정입안을 계획하고 있다”며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계획으로는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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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 고려 않은 졸속 전시행정”
 
■ 주민들 반응
북가좌1구역 내 주민들은 구청이 수립한 정비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업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정비구역 지정단계에서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비계획으로는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구역 내 한 주민은 “우리 구역은 정비기본계획이 고시된 이후부터 추진위 설립을 위해 노력해 통·반장들이 나서서 추진해 오던 곳”이라며 “하지만 정비기본계획 상 층수가 7층이라고 정해진 것 때문에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 좋지 않았고, 결국 주민들 간에 갈등으로까지 이어져 추진위를 설립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갈등해소를 위해 구청이 우리 구역을 시범사업장으로 선정하고 정비계획을 수립해 줬다”면서도 “하지만 오히려 현재 정비구역 지정을 받은 사업계획으로는 추진위를 설립하기 위해 동의서를 징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지난해 공청회 당시 주민들이 층수를 높여달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구청이 이를 받아주지 않고 그대로 시의 심의를 받았다”며 “이때 추진위 승인이라도 받은 상태에서 추진위원들과 임원들이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구청에 층수완화 관련 민원을 제기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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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력·예산난에 암묵적 허용
‘공공성’ 명분에 무대책 폐지
 
■ 왜 폐지했나
서울시는 정비계획 수립에 따른 예산난과 주민들의 민원 등을 예방하기 위해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제도를 시행해 왔다. 심지어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이 더욱 용이하도록 조례를 개정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7년 12월 주민제안형 정비구역이 사업성에만 치우친다고 판단해 이 제도를 폐지했다.
 
▲각 시·도 조례로 정비구역 주민제안형 유도=〈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정비계획은 시장·군수가 수립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광역자치단체들은 각 시·도 조례를 통해 주민제안형을 허용해 왔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를 제정할 당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정비구역 지정을 입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지난 2003년 12월 30일 제정된 〈도·정 조례〉 제6조에 따르면 “구청장이 주민요구에 의하여 정비구역의 지정을 입안하고자 하는 경우 제5조제7호의 규정에 의한 동의는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종전 정비계획 수립은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을 통해 이뤄지는 게 당연한 절차였다.
 
게다가 서울시는 지난 2005년 3월 17일 조례를 개정해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을 더욱 쉽게 유도했다. 이때 개정됐던 조례 제6조에 따르면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도 정비구역지정 입안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을 추가로 명시했다. 즉 추진위 승인을 위한 동의율에 17%만 더 확보하면 주민제안이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 지난 2006년 1월에는 ‘추진위원회는 관할 구청장에게 정비구역 지정에 대한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추진위 승인을 받게 되면 별도의 동의절차 없이 곧바로 정비구역 지정을 입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예외적으로 허용=이후 서울시는 원칙적으로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제도를 폐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지난 2007년 12월 26일 개정된 조례 제6조에 따르면 “단계별 정비사업 추진계획상 정비계획의 수립시기가 1년 이상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경우에는 토지등소유자가 정비계획의 수립에 대한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 지역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와 같은 규정은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2008년 2월 1일부터 시행됐다.
 
또 기존의 추진위 승인을 받은 재건축·재개발 예정구역들의 경우에는 경과조치를 두면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주민제안형을 허용했다.
 
당시 개정된 조례 부칙에 따르면 “제6조의 개정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조례 시행 전에 승인된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이 조례 시행일로부터 1년 이내에 종전 규정에 따라 정비구역지정의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결국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조례가 개정되고 1년이 지난 지난해 2월 1일부터는 추진위 승인을 받은 예정구역이라도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을 할 수 없게 됐다.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제도가 조례에서 폐지된 이후 지난해 2월 개정된 〈도정법〉에서도 주민제안형 제도는 폐지됐다. 이후 서울시는 주민제안형 정비구역 입안에 따른 동의요건을 더욱 강화했다. 주민제안형을 적극 허용할 당시에는 토지등소유자의 2/3 이상 동의만 있으면 가능했지만, 현재는 토지면적의 1/2 이상 동의가 추가로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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