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재건축결의 줄패소 브레이크
서울고법, 재건축결의 줄패소 브레이크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9.08.18 0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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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15:55 입력
  
소송 몸살 앓는 조합에 단비… 대법원 판결에 촉각
재판부 “개략적 산출기준만 정하면 결의 유효”
법령개정 등 사업 초기단계서 확정 불가 인정
 

재건축·재개발 결의나 조합설립 무효 소송 등을 제기하는 이들은 동의서의 내용 중 비용분담에 관한 기준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무효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조합들은 건설교통부가 고시한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법을 지켰는데도 패소 판결을 받아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이제까지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조합들의 줄패소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법원의 판단에 새로운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의 특성을 재판부가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조합 승소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결의나 조합설립 무효 등의 소송에서 조합들이 ‘줄패소’ 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고등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업초기단계에서는 개략적인 산출기준만 명시하면 결의가 유효하다는 것으로 고등법원 판결로는 처음이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재판장 성기문)는 지난달 30일 제갈모씨 등이 일신연립재건축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재건축결의 무효확인’ 소송에서 “이 사건 동의서와 조합정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비용분담에 관한 산출기준이 정해져 있다”며 조합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같은 사안으로 조합패소 판결을 내린 1심을 뒤엎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조합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법무법인 다래의 김영진 변호사는 “유사소송을 겪고 있는 전국의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에게 이번 판결이 리딩 케이스로 적용될 것”이라며 “현재 대법원에 같은 쟁점으로 계류 중인 사건에도 이번 판결이 참조될 수 있어 조합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신연립재건축조합은 같은 사건에서 1심에서는 패소판결을 받은 바 있다. 우선 일신연립재건축조합은 사업에 동참하지 않는 제갈모씨 등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6월 인천지방법원(재판장 김장훈)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것은 재건축결의가 유효하다는 의미로 조합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갈모씨 등은 재건축결의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바로 다음달인 7월에 인천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한영환)는 “재건축결의의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건물의 철거 및 재건축비용의 분담금액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조합측은 다시 항소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인천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또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조합승소 판결에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특성이 상당부분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업초기단계에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조합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재건축 추진과정에서 추가로 참가하거나 탈퇴하는 구분소유자가 생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령의 개정, 주택시장의 변화 등으로 외부여건이 변동하게 마련”이라며 “재건축을 추진하는 초기단계에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진위의 활동, 조합의 설립, 사업관계자와의 협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단계적·발전적으로 형성돼 건축설계나 사업계획 등이 완성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게 통례”라고 부연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관련법의 조항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재건축결의를 규정하고 있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7조제3항에 따르면 제2호로 ‘건물의 철거 및 신건물의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산액’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개산액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뒤에야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조합 창립총회 당시에 조합원들의 비용분담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도정법〉 시행령 제26조제1항제2호 또한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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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소송에서도 조합설립동의서 유효 인정 판결
 

■ 인천지법 조합 승소 판결 의미
민사소송이 아닌 행정소송에서도 조합승소 판결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조일영)는 지난 6월 11일 이모씨 등이 인천시 남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조합설립인가 취소’ 소송에서 “조합설립동의서의 기재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모씨 등은 당시 소송에서 동의서 중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 및 사업완료 후 소유권 귀속사항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기재돼 있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학익1구역 재개발조합은 추진위 운영규정 상의 조합설립동의서 내용 그대로 동의를 얻어 조합을 설립했다.
 
동의서 중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 역시 △조합정관에 따라 경비를 부과하고 징수하며, 관리처분시 가청산하고, 조합청산시 청산금을 최종 확정함 △조합원이 소유한 자산의 가치를 조합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평가해 형평의 원칙에 의거, 조합정관에서 규정한 관리처분계획기준에 따라 비용 및 수익을 균등하게 부담·배분함 △시공사에 지급할 공사금액 및 사업관련 제반비용은 주택 및 부대복리시설의 일반분양수입금과 조합원총회에서 결의되거나 서면동의한 조합원분담금으로 우선 충당하고, 부족금이 발생할 경우 조합정관 및 관리처분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분담함 등이었다.
 
재판부는 이 동의서 양식을 그대로 따른 조합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은 토지등소유자들로 하여금 장차 위와 같은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등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적정한 평가를 기초로 조합정관에 따라 분담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을만큼 비용분담의 기준을 제시했다”며 “또한 사업완료 후의 구분소유권 등에 관한 사항에 관해서도 그 신축건축물에 대한 분양기준, 그에 따른 절차 등에 관해 예측가능할 정도의 기준이 정립돼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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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처분단계서 분담금 구체화
동의 못할 땐 현금청산 길 있어
 

■ 판결에 담긴 뜻
비례율 등 분담금 산출기준이 명시됐다면 비용분담 기준을 정했다고 봐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사업초기에는 사업참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개략적인 금액을 기준으로 비용분담의 산출기준을 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 만일 사업계획 변경 등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현금청산으로 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비용분담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분담액을 정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다만 구분소유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건축에 참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그 개략적인 금액을 기준으로 비용분담의 산출기준을 정하면 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도정법〉 제48조제1항에 따르면 시공자 선정 후 분양신청기간이 종료된 다음 분양신청 현황을 기초로 ‘분양대상자별 분양예정인 대지 또는 건축물의 추산액, 분양대상자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명세 및 사업시행인가의 고시가 있은 날을 기준으로 한 가격, 정비사업비의 추산액 및 그에 따른 조합원 부담규모 및 부담시기 등의 사항이 포함된 관리처분계획에 대해 조합총회의 의결을 거쳐 시장·군수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단계에서야 비로소 조합원의 비용분담사항이 어느정도 구체화될 수 있고, 재건축결의 당시에는 조합원의 비용분담사항에 대해 구체적 금액으로 정할 수 없고 산출기준으로 정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만약 조합원들이 이러한 내용의 재건축결의에 동의한 후 시공자가 선정돼 사업계획이 변경됨으로써 그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에 변경이 발생해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도정법〉 제47조에 따라 분양신청을 하지 않거나 분양신청을 철회함으로써 시가에 의해 현금으로 청산금을 지급받고 재건축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재건축결의 당시 개략적인 비용분담의 산출기준을 정하는 것이 조합원의 지위를 심히 불안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일신연립재건축조합은 동의서 중 비용의 분담기준으로 비례율이나 권리가액 산정 기준 등이 명시돼 있다.
 
이는 〈도정법〉 시행규칙 별지 서식에 따라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얘기도 된다.
 
 
별지 4호의2 서식에 따르면 분양대상자별 분담금 추산방법에 예시돼 있는데 ‘분양대상자별 분담금 추산액=분양예정인 대지 및 건축물의 추산액-(분양대상자별 종전의 토지 및 건축물의 가격×비례율)’이다. 여기서 비례율은 ‘(사업완료후의 대지 및 건축물의 총수입-총사업비)/종전의 토지 및 건축물의 총 가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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