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리포트② 수수방관 업체에 속수무책
정비사업 리포트② 수수방관 업체에 속수무책
“건설사 ‘수퍼 乙질’ 겉으론 윈윈… 속으론 책임 떠넘기기”
  • 박노창 기자
  • 승인 2013.11.14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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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변경 등 주장하며 사업 고의 지연시켜
시공자 교체도 쉽지 않아 사실상 속수무책
 

 

 

“지금 같은 불경기에 사업을 추진하면 조합도 건설사도 모두 망한다. 일단 사업계획부터 최근 트렌드에 맞춰 중·소형 위주로 변경하고, 그 다음 경기를 봐 가며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재건축사업이 성공하려면 일반분양가가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조합보다 전문가다. 당분간 순연하는 게 최선이다.”(건설사) “사업계획도 변경하고 본계약 협상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업계획을 또 다시 바꾸자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건설사 말대로 모두 했는데도 원점으로 돌아왔다. 고의로 사업을 지연시키는 건설사 행태에 신물이 난다. 구멍가게도 아닌 대기업이 어떻게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나.”(조합) 주택경기 침체 장기화는 조합과 건설사의 지위마저 바꿔 놓았다. 이제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키는 건설사에게 넘어갔다. 갑을 관계가 바뀌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건설사 몫이 돼 버렸다. 문제는 ‘수퍼 을’ 건설사에게 ‘허울뿐인 갑’의 위치에 있는 조합이 속절 없이 끌려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맞설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윈윈’이라는 말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해 하는 건설사의 모습에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번 호에서는 건설사를 비롯한 협력업체들의 무책임한 모습을 고발한다.

 

경기 소재 N조합은 인근 지역에서도 사업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곳이다. 당연히 건설사들의 치열한 수주전이 벌어졌다. 수주전에 참여했던 건설사들은 앵무새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건설사를 시공자로 뽑아 주신다면 이 지역 최고의 랜드마크 아파트로 보답하겠습니다. 조합원들의 부담금을 줄이고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겠습니다. 이 사업제안은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당시 모 건설사가 접전 끝에 시공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N조합의 시공자는 바뀌게 된다.
각각 다른 건설사를 지지했던 주민들이 갈라졌고, 우여곡절 끝에 시공자 선정총회가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건설사가 더 좋은 사업조건을 내걸어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최종 시공권의 주인은 지금의 건설사에게 넘어왔다. 세 번째 파트너로 건설사들이 그만큼 탐을 냈던 곳이었다.


사업은 잘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침체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수주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곳이었지만 단 3년만에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이때부터 건설사의 책임 떠넘기기가 시작됐다.
겉으로는 조합과 상호 윈윈을 외치며 설계변경 등을 주장했지만 실상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시간 끌기용 미끼였을 뿐이었다는 게 현재 조합의 판단이다.


이미 이전에 조합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봤다. 해당 지자체는 물론 국토해양부와 시의회, 국회의원을 찾아 다니며 부탁도 하고, 협박(?)도 했다. 그 결과 세대수 제한도 풀고, 용적률도 올렸다. 그런데도 건설사는 사업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런 건설사 말을 믿고 사업계획을 변경한 결과 10가구가 늘었다. 사업기간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건설사는 사업기간 지연 책임이 조합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건설사가 또 다시 설계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런 건설사에 맞설 무기가 조합에게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계약을 해지하고 대체 시공자를 선정했지만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는 어불성설이다. 되레 건설사들은 기투입 비용을 회수할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조합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조합 집행부는 건설사 눈빛에서 ‘어디 한 번 해 보시지’라는 조롱감마저 느낀다.


게다가 조합을 보필해야 할 정비업체는 ‘돈줄’인 건설사 눈치만 봤다. 돈줄이 끊기자 바로 떠나 버렸다. 수익창출이 최우선인 민간 정비업체도 아닌 공공기관이 설립한 정비업체가 말이다.


‘골리앗’ 건설사에 ‘다윗’ 조합은 여전히 힘없는 약자일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을 한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경기회복이다. 해결책은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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