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신사동 두꺼비하우징 시범지구 현장 가보니…
은평구 신사동 두꺼비하우징 시범지구 현장 가보니…
  • 김병조 기자
  • 승인 2012.02.23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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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3 13:40 입력
  
빙판에 꽁꽁 묶인 두꺼비하우징… “재개발이 낫지”
급경사 구릉지서 사람·자동차 모두 거북 걸음
노후주택 방치 따른 부작용에 실효성도 의문
 
 

 

폭설과 한파는 노후 주택지 주민의 삶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전역이 폭설로 마비되자, 이튿날 서울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 일대 두꺼비하우징사업 시범지구는 쌓인 눈과 빙판으로 정상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주차장이 없는 언덕 길가에는 빙판 때문에 일터로 나가지 못한 차량들이 즐비했다. 황색 번호판의 화물차 차주로 보이는 중장년 주민 몇 명은 두툼한 패딩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하루를 공쳤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서울시가 구역해제 후 전환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모델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두꺼비하우징사업 시범지구 현장을 폭설이 내린 다음날 취재했다. 도시 저소득층의 삶이 그대로 드러났다.
 

▲노인들 급경사 빙판 앞에서 거북이걸음=용기 있는 차주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차를 몰고 일터로 나갔다. 주로 화물차였다. 경사가 가파른 곳을 내려가는 화물차는 빙판에 미끄러질까봐 연신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루 밥벌이와 직결돼 있는 화물차주들은 쉬는 것이 곧바로 수입의 중단으로 이어진다. 시범지구 내에는 유독 소형 화물차들이 많이 보였다. 주차돼 있는 몇 대의 화물차 역시 차주가 일터로 나가려는 듯 엔진 온도를 높이기 위해 공회전을 시켰다.
 

주민들은 온통 거북이걸음을 걸었다. 폭설이 내린데다가 한파까지 겹쳐 도로가 꽁꽁 얼어붙어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했다. 급경사 도로에는 흰색 결정의 염화칼슘이 여기저기 뿌려졌다. 염화칼슘이 부족한 곳에서는 대용으로 집안에서 굵은 소금을 가져와 뿌렸다. 부작용도 발생했다. 어떤 곳은 염화칼슘에 의해 얼음이 녹으면서, 물과 얼음이 섞여 도로가 더 미끄러워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평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적은 적설량도 시범지구에서는 문제가 됐다.
 

빙판 지역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문제였다. 낙상사고의 위험성도 커 보였다. 내려갈 때는 청년들조차도 미끄러지며 종종 걸음으로 지나갔다. 갓 걸음마를 뗀 꼬마아이와 경사지를 내려가던 아이 엄마는 아이와 자신의 몸을 챙기느라 부산스러웠다. 특히 노인들은 더욱 힘겨워 보였다. 허리가 굽은 한 노인은 경사지를 주춤거리며 내려가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던지 옆에 주차된 자동차에 의지한 채 몸을 추스르며 겨우 내려갔다. 이곳은 예전에도 낙상사고가 있었던 곳인지, 도로 바닥에는 경사도를 줄이기 위해 아스팔트 재질로 작은 험프(hump)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서 얼어붙은 빙판으로 인해 무용지물이었다.
 
우편집배원에게도 시범지구에서의 겨울 근무는 고역이다. 빙판 때문에 오토바이 배달을 포기해야 했다. 집배원은 오토바이를 대신해 간이카트에 우편물을 옮겨 싣고 손으로 카트를 끌고 배달에 나섰다.
 
오후가 되어 햇볕이 쏟아져도 2~3m 폭의 좁은 도로 위의 눈은 녹지 않았다. 협소하게 붙어 있는 주택들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햇볕이 도로에 쌓인 눈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시범지구 내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런 상황이 매년 겨울 폭설 이후마다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철거민 집단이주한 곳=시범지구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과 같은 구릉지이기 때문에 곳곳이 경사지형이다. 구릉지는 폭설이 내린 겨울에는 썰매장이 돼 버린다. 은평구 일대 상당부분이 북한산을 기점으로 구파발과 서오릉 등 서울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산맥에 걸쳐 있으며, 특히 시범지구는 이 지형에 속한 봉우리 중 하나인 ‘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이 곳은 수십 년 전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다. 그 때까지는 산이었지만 약 30년 이전부터 철거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이 노후주택지의 대지 또한 그때 졸속으로 그려진 구획으로 인해 27평 안팎의 소규모 필지로 구성돼 있다.
 
30년 간 이 곳에서 살아왔다는 주민 A씨는 “이 곳은 서울 중랑천 지역 철거민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기고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며 “주민들 역시 나이 많고 영세한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열악한 곳 방치하면 더 열악해진다”=주민들은 서울시의 ‘보존’ 정책에 대해 ‘방치’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두꺼비하우징사업에 대한 실효성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저소득계층 거주에 따른 열악한 주거환경의 악순환 구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시범지구는 은평구 일대에서도 소문난 저렴 주택 지역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주택도 있다고 했다. 소문을 듣고 들어온 저소득층들은 이 곳에서 약간이라도 목돈을 모으면 주저없이 이곳을 떠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저소득층이 들어오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것. 떠나고 싶은 곳에 돈을 들여 낫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두꺼비하우징사업의 근본 사업 구조도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게 문제다. 두꺼비하우징사업은 도로 및 CCTV 등 기반시설은 공공에서 설치해 주되, 주택개량은 주민이 저금리의 대출을 받아 진행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 상당 수는 궁극적인 대안은 재개발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개발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공공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분담금이 문제인 상황이라면 분담금 감소를 위해 공공에서 지원 폭을 높여 달라는 요구다.
 

주민 B씨는 “철거민 집단정착촌으로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 때 들어온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되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곧바로 떠나고 싶어하는 세입자들과 돈 없는 소유자들이 모여 사는 이 곳에서 두꺼비하우징사업과 같은 대출 제도로는 이 곳을 새롭게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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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사업… 안되면 말고?
은평구청 “기대반 우려반”
 

■ 두꺼비하우징 어떻게 보나
두꺼비하우징사업을 추진하는 은평구청도 사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알고 있다. 구청 입장에서도 ‘기대 반 불안 반’ 형태의 사업 추진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구청은 지난 8일 SH공사와 도시재생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두꺼비하우징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키로 했다. SH공사 소유의 다가구주택을 두꺼비하우징사업 주민의 집수리 기간 중 임시거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순환임대 방안을 연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업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구청 관계자는 “두꺼비하우징사업은 일종의 벤처사업으로, 한 번 시도해보자는 취지”라며 “서민들이 현재의 주거지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사업의 핵심 내용”이라고 말했다.
 

구청은 2~3년 간 시험적용을 하면서 이 과정에서 장단점을 파악한 후 대책을 마련해 그 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청에서는 올해 예산으로 시비와 구비를 합쳐 13억원을 책정한 상황이다. 이 예산으로 시범지구의 도로 등 기반시설 정비에 나설 예정이다.
 

구청에서 말하는 두꺼비하우징사업의 성격은 ‘점진적 도시재생’이다. 전면 철거 형태의 재개발사업에 가구당 1억5천만원에서 2억원을 내야 한다면, 두꺼비하우징사업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천천히 느리게 바꿔가자는 제안이다.
 

구청 관계자는 “대출도 주민들에게 무조건 대출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사람만 받으면 된다. 고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고치면 된다. 거주지를 보호하면서 점진적으로 오랜 시간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것이 취지”라며 “사실 세입자들을 도울 대책은 없다. 세입자들이 자기 집이 아닌 상황에서 2천만원을 들여 집을 고칠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소유주가 세입자를 위해 집을 고쳐줄리도 없다”고 말했다. 
 

구청 측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봤지만 현행 법 체제 내에서 다른 방안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등 공인된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법 테두리 내에서 정해진 무상 집수리 사업 등을 적용할 수 있지만, 시범지구의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아 지원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두꺼비하우징사업을 진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구청이 제안하는 ‘보존’의 가치가 쉽사리 ‘방치’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꺼비하우징사업을 통해 도로 등 기반시설은 구청에서 담당하더라도 결국 주택은 주민들이 독자적인 개선 의지를 갖고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리하지 않고 버티는 소유주들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청에서도 주택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대안이 없는 상태다.
 

게다가 구 의회에서 지원 조례 통과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9월 은평구 의회 지원 조례 제정안이 상정됐다가 부결됐던 적이 있다. 반대 의원들은 구청이 (주)두꺼비하우징과 민관합작회사를 만드는 것을 놓고 ‘민관합동회사가 독식할 우려가 있다’ ‘시민단체가 왜 이권사업에 참여하냐’ ‘시민단체에 대한 관의 특혜 아니냐’ 등의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구청은 “두꺼비하우징사업 관련 입찰에는 ‘(주)두꺼비하우징’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기준에 맞는 다른 회사들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주택시장 상황이 개선됐을 때에도 과연 두꺼비하우징사업의 존재가치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주택시장 상황이 좋아져 인근 지역에서 재개발사업을 통해 주거환경 개선과 자산가치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데 두꺼비하우징사업과 같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존속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물음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의 수익률이 좋을 때에는 결코 두꺼비하우징사업과 같은 이런 방식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경기침체로 사업성이 좋지 않으니 대안 형태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경기침체가 장기화 된다는 전제 하에 존속가능한 사업형태라는 얘기다”라며 “경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클 측면에서 볼 때 두꺼비하우징사업이 정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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